1. 중세의 논리학 및 역사
'중세 논리학'은 일반적으로, 1200년대부터 1600년대까지의 중세 서구에서 발전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한 형태를 말한다.
스토아 논리학은 형성되어 수백 연내에 고대 세계에서 지배적인 논리 체계가 되어 있었다. 암흑시대를 거쳐 논리학의 연구가 부활했을
때, 그 주된 근거는 기독교 철학자 보에티우스였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즐기고 있어 스토아 파의 저작에는 서툴렀다.
12세기까지의 서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범주론', '명제론', 여기에 포르퓨리오스의 '이사고 게이' (범주론의 주석서)의
보에티우스에 의한 라틴어 역 뿐이었다. 이러한 저작은 '구논리학'으로서 알려져 있었다. 이 흐름에서의 중요한 작품은 '이사고 게이'의 주해인
페트르스 아베라르두스의 '잉레디엔티브스'이다. 그의 직접적인 영향은 적지만, 솔즈베리의 존이라는 제자를 통한 영향은 커서,
그의 엄밀한 논리적 분석을 신학에 적용하는 기법은 계속되는 시대의 신학적 비판이 세련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3세기 초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의 나머지의 작품 ('분석론 전서', '분석론 뒷말', '궤변 논박론')이 서구에서 부활했다.
지금까지의 논리학서는 그 대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의 바꿔 표현이나 주석이었다. 13세기 중순부터 14세기 중순까지는 논리학의
현저한 발전이 보였던 시대의 하나이며, 특히 지금까지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에 별로 기초를 두지 않은 독창적인 세 개의 분야에서의 발전이
보였다. 그 3개의 분야는 아래와 같다.
1)공의어 (共義語) 의 이론. 공의어는 논리학적으로 필수의 단어이지만, 자의어와는 달라 단독으로 무엇인가를 의미하지 못하고, 다른 말과
수반하는 것으로 '모두 의미하는' 일이 생긴다. '와', '없다', '모든', '만약' 등이 공의어의 예시이다.
2) 대시(代示)의 이론. 대시 이론으로는 술어(예를 들면 '인간')가 각각 것(예를 들면 모든 인간)의 영역에 어떻게 미치고 있는가 한 문제를 취급한다.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명제에서, '인간'이라는 말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인간에 이르고 있는가, 즉 모든 인간을 '대시'하고 있는가?
혹은 과거·미래에 걸치는 모든 인간을 그 범위로 하고 있는가? 말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 각각의 것을 대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인가? 이 개념은
현대의 1층 술어 논리의 선구자라고 주장하는 중세 학자도 있다. ' '코프라티오'(형용사의 지시 가능성)이나 '안프리아티오'(지시 영역의 확장),
'디스트리브티오' 등 관련하는 이론과 함께 대시 이론은 서구 중세 논리학의 가장 독창적인 실적의 하나를 이루었다.
3) 추단의 이론. 추단은 가정적·조건적인 명제, 즉 두 개의 명제가 '만약 ... 라면~'이라는 형태로 연결된 명제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달린다면
신은 존재한다' 오컴의 윌리엄의 '논리학 대전'에서 추단의 이론이 완전하게 발달한 모습이 보인다. 거기서 오컴은 '질량적인' 추단과 '형식적인'
추단을 구별하고 있지만, 이는 대략 말해 각각 현대의 논리 포함과 논리적 시사와 동등하다. 같은 설명이 요하네스 브리다누스 및
사크소니아의 아르베르트스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흐름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중요한 작품으로서는 요하네스 포인소트 (1586년~1664년)의 '논리학',
프란시스코 수아레스(1548년~1617년)의 '형이상학적 논쟁', 죠반니 지로라모 삭케이리(1667년~1733년)의 '실증 논리학'이 있다.
또한 파라비, 이븐 시나, 가잘리, 이븐 루시드 그 외의 이슬람 논리학자의 저작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어 고대의 사상과
중세의 서양사상이 사이를 주선한 점으로 중요시되어 왔다. 파라비(873년~950년)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자로, 미래의 불확정성, 범주의 수와
범주 간의 관계, 논리학과 문법학의 관계, 비아리스토텔레스적인 추론 형식이라는 화제에 대해 논의했다. 파라비는 또 가말 삼단논법이나 유추의 이론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지만, 고대에서는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오히려 스토아파 논리학의 영역이다.
이븐 시나(980년~1037년)는 아비센나 논리학의 창시자이다. 아비센나 논리학은 이슬람 세계의 논리학에서의 주도적인 체계로서의 지위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으로부터 빼앗고, 더욱이 아르베르투스 마그누스와 같은 중세 서구의 저술가에게 심대한 영향을 줬다. 이븐 시나는
가언 삼단논법 및 명제 논리에 관한 저작을 남기고 있는데, 이는 모두 스토아파 논리학의 영역이다. 그는 '시상적으로 양상화된' 삼단논법이라는
독자 이론을 발전시켜, 과학적 방법에 대해서 비판적인, 일치법, 차이법, 공변법 등의 귀납 논리를 이용했다.
파흐르 알딘 알라즈(1149년생)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격'을 비판해 원시적인 귀납 논리학을 조직 세우고 있어 존 스튜어트 밀 (1806년~1873년)에
의한 기능론 이학 발전의 선구가 되고 있다. 알라즈의 저작은 포스트 아비센나 논리학으로 향하는 이슬람 논리학의 새로운 흐름의 착수라고
후대의 이슬람 학자에 의해서 보인다. 이 흐름은 그의 제자로 개념과 동의라는 문제에 관련되는 논리 형식을 발전시킨
아프달라딘 알후나지(1249년몰)에 의해서 더욱 정교하게 되었다. 이 학파에 대한 응답 속에서, 나스르 알딘 알투시(1201년~1274년)는 신아비센나
논리 학파를 창시하였는데, 이 학파는 이븐 시나의 저작에 충실히 하여 그 후 수 세기의 사이 지배적인 포스트 아비센나 논리 학파의 라이벌로서 존재했다.
이븐 알나피스(1213년~1288년)가 아비센나 논리학의 연구서를 저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븐 시나의 '알이샤라트'(상징)과 '알히다야'(안내)의
주석서라는 형태로 쓰여 있다. 그리스 논리학에 대한 또 하나의 체계적인 논박으로서 이븐 타이미야(1263년~1328년)의
'알랏드 아라 알만티키인' (그리스 논리학자에 대한 논박)이 있지만, 본서에서는 삼단논법의 타당성은 아니라 유용성이 문제시되고 있어, 귀납 추론
쪽이 바람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븐 타이미야는 삼단논법의 확실함에도 의문을 나타내고 있어 비교를 바람직한 것으로 했다.
15세기의 무하마드 이븐 파이드 알라 이븐 무하마드 아민 알샤르와니에 의한 '샤르 알타크밀 필만티크'는 아랍인에 의한 논리학 서로 연구가
좋게 되어 안으로는 마지막 저명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도 논리학에 관해서 '수천 페이지 위에 한 층 더 수천 페이지'가 14세기부터
19세기의 사이에 쓰여 있지만, 이 시기에 쓰인 작품의 아주 일부가 역사가에 의해서 연구되고 있는 것이 현상이며, 그 때문에 이 시대의
이슬람 논리학서의 원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댓글